[이경국의 대구춘추 167] 백색 천지가 아름답다
이경국 칼럼니스트
온천지가 소복을 입었는지 아니면 귀한 쌀가루를 뿌렸는지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실 소복차림은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초상집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비통해 하는 모습은 딸들만이 합니다. 남자는 그저 눈물이 나면 화장실 앞에서 멀뚱한 모습으로 담배만 피웁니다.
소싯적에는 워낙 가난하여 장독대 위에 쌓인 눈을 보면 쌀가루였으면 하는 기원을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세상도 깨끗하여 눈을 뭉쳐서 먹기도 했습니다. 핵실험을 하고 부터는 비를 맞을 수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이니 발전이니 거들먹을 떨지만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몰살지경에 이르게하고 말았습니다.
크게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개발 경쟁이 그러하고 작게는 김정일의 핵공갈이 그러합니다.
경전(불경, 성서, 쿠란, 도전, 성전)을 보면 경쟁에 의한 전쟁으로는 평화유기가 불가합니다. 생명을 핵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작품이 나올 턱이 없으며, 한강의 노벨문학상도 마냥 즐길 수만 없는 역사왜곡과 외설로 인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필자의 고향 안동으로 시집을 왔다길래 속으로 반겼더니 남편과 문학적인 사고가 맞지 않아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는 문학세계에 편협된 사상의 사고로 인하여 자식을 둔 가정에 금이 가게 되었으니 필자같이 대자유를 구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노벨상에 너무 취할 바는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상은 인간이 반기기 마련이지만 한편 그 잣대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고 봅니다. 어쩌면 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돋보이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봅니다.
세상은 성적순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희생으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상위 5%가 리더가 될 수는 있겠지만 세상은 기층세력이 버티어 주어야 지속가능 할 것입니다.
잡초가 물난리를 막아 주고 있으며, 굽은 나무가 산을 지켜 냅니다. 모란이나 백합은 화려하지만 이름 모를 작은 雜草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오를 때 보지 못한 꽃은 내려올 때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등산은 빠르게 올라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급하게 하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천천히 오르면서 일행이 흘리는 땀에 취해 보면서 바위나 물을 만나면 윤선도의 <오우가>도 읊조리면서 느리게 하는 것이 산행의 묘미일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개발에만 중독이 되어 지구가 너무나 아파합니다. 눈이 내려도 詩를 쓰지 않는 세상입니다.
인간이 달에 다녀온 후로 보름달을 보고 빌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수 천년을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하여 빌었습니다.
황진이는 <반달>이란 詩로 [누가 곤룐산에 옥을 잘라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견우님 떠나신 뒤에 수심하여 허공에 던져 놓았네] 라고 읊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시입니다. (誰斷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愁擲壁空虛 )
고교시절에 <동짓날>의 詩와 함께 필자를 혼절지경에 이르게 한 황진이의 <반달> 이었습니다.
그녀가 기생이라고 양반댁 규수보다 덜 깨끗하다는 생각이 잘못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정조관념은 원시시대는 없었습니다.
이념에 불과하며, 처녀막을 중히 여기는 행위는 여성을 구속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중국의 전족(纏足)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 인간을 혼절(魂絶) 시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김삿갓도 그러합니다.
황진이는 <반달>을 보고 직녀로서 견우를 애틋하게 생각했었는데 현대인은 반달을 보지도 못할뿐더러 달에서 떨어지는 운석(雲石)의 크기로 돈만 따지고 있습니다.
계수나무는 물론이고 은도끼와 옥도끼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토끼도 없는 보름달을 보면서 빌지도 않지만 사주관상을 보기 위해 들락거리는 시대입니다.
자녀들의 건강이나 수능성적은 후순이라 합니다. 지가가 ''사귀고 있는 남자가 남편에게 들키는 문제''가 話頭라고 합니다.
평생을 공부한 필자의 친구인 토제 선생의 현실담입니다. 괘락의 전성기이니 이를 말세나 말법(末法) 시대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툭하면 국민을 들먹이고 있지만 백성을 위한 정책은 눈꼽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정권탈취만을 위한 탄핵이니 특검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눈내린 세상을 보아도 시심도 없으며 그저 눈내린 후의 지저분한 세상과 같으니 저들이 사라지면 맑은 세상이 도래 할 것입니다.
극도로 혼탁스러운 카오스에서 빠른 코스모스 세상이 오고 있기에 희망을 가져 봅니다.
백색은 화려하고 11월의 폭설은 한 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나타난 신몰(神沒)스러운 서설(瑞雪)로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링컨아카데미 전무(전)
사)한국생활문학회 이사(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주)동서증권 영업부장(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