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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성 칼럼 18] 客窓寒燈 - 운명(運命)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강호성 前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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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10.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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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라이너 마리아 릴케!

운명이란 무엇인가?

스토아철학자들은, "세상은 보편적 법칙인 로고스(logos)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인간은 정해진 본질이 없이 태어나기에,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간다고 했다.

불가(佛 家)에서는 업(業)과 인과법 (因果法)에 따라 삶이 전개된다고 하면서도,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서 '업'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유가(儒 家)에서는 하늘이 내린 명(命)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실천과 수양으로 그 길을 넓힐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도가(道 家)에서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곧 운명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S.Freud)는 무의식과 어린 시절의 경험이 반복되는 삶의 패턴을 만든다고 했다,

'융(K.G.Jung)은 인간 내면의 원형이 특정 패턴을 형성하지만, '개성화 과정'을 통해 운명을 초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름지기 가을이다.
 
난 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기도로 시작하는 시인 ''가을날''을 좋아 한다.

 Rainer Maria Rilke 

Herr: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ss,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ss die Winde las,
 
Befiehl den letzten Freu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uedlichere Tage,
 
drae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Tage die letzte Suess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aetter treiben. 
 
-aus:Das Buch der Bilder(1902)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녘에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감미로움이 스며 들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남아 깨어나 책을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길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스럽게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은 릴케가 1902년 27살에 파리에서 쓴 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Rainer Maria Rilke)
 
그의 본명은 Rene Karl Wilhelm Johann Josef Maria Rilke이다.

난 학창시절 릴케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 그가 여성인 줄 알았었다.
 
왜냐하면 서양사람들의 이름 중에 중간 이름(middle name)은 대개 종교적인 세례명을 쓰게 되는데, 릴케의 중간 이름인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에서 따온 이름이기에, 당연히 여성인 줄 오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아마 릴케의 어머니가 외아들을 유별나게 키우고자 했던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죽게 되자, 릴케는 여자 이름에, 여자 옷을 입고 7살때까지 인형처럼 여자아이로 길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미들 네임이 마리아로 비정해 볼 수도 있겠다.
 
이처럼 그의 유년시절은 고독했고, 그때의 경험들이 훗날 릴케 시의 중심 세계인 '고독'으로 자리매김했을 수도 있다.

그가 9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황제의 궁 가까이에 있으려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 살았다.

그 뒤에도  릴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생동안 독일, 프랑스, 러시아, 체코, 이태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를 떠돌며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조각가인 로댕(Auguste Rodin)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때 로댕에게 사사한 브레멘 출신의 조각가인 '클라라 베스토프(Clara Westhoff)'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으나, 그해 말에 헤어져 각자 서로의 길을 갔다고 한다.

이와같이 방랑시인이자 고독한(?)시인 릴케는 고독과 허무와 싸우면서도 1910년 일기 형식의 소설인 <말테의 수기(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를 발표했는데,
 
이는 덴마크의 젊은 시인 말테의 이름을 빌어, 자신이 파리에서의 죽음과 불안에 대한 생각들을 기초로 하여 쓴 일기형식의 산문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그의 몸은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던 것 같다. 
 
백혈병에 걸린 것도 모르는 사이 몸은 점점 원기를 잃어 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말테의 수기'를 읽고 그를 흠모하여 찾아온 이집트 여인에게, 평소 그가 좋아하고 가꾸던 장미꽃을 꺾어주려다가 그만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에 걸리고 말았다.

급기야 릴케는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 외딴집에서 영영 눈을 감고 말았다. 그의 나이 51세!

릴케가 장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의 '묘비명'만 봐도 짐작이 간다.

"Rose, oh reiner Win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ndern."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운(運)은 사람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야, 좋은 운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직감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또한 운명을 스스로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좋은 운명으로 키워갈 수 있겠다.

릴케는 그의 시 <가을날>을 통해 우리의 삶에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이 가을에 어떤 열매를 익히고 있느냐고!'

운명은 우리의 가을을 여물게 하기도 하고, 또 후회로 남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 앞에 맞서서 묵묵히 나의 길을 가야 하겠다!

"비켜라! 운명아, 내가 나간다."
 
 
::   강호성  세계사이버대학 총장   ::

 

 - 행정학 박사

 -  한민대학교  부총장

-   한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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