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국의 대구춘추 70] 어느 노숙자의 하루
이경국 칼럼니스트
어쩌면 노숙자(露宿者)라기 보다는 홈리스니스(homelessness)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지하철안 지하도 노숙자 몇 분을 안다. 겨울철에 걷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지하도이다.
자그마치 명동에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역까지 걸을 수 있는 긴 코스이다.
늘 있는 그 자리에 노숙자가 있다. 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얼굴이 익숙하다는 의미다.
그들의 사연이야 오죽 많을까? 한 때 많은 종업원을 거느리던 중소기업 사장도 있다. 모두 자랄 때는 금이야 옥이야 했을 것이다.
집없는 서러움이 얼마나 큰데.....
지금은 무자식이 상팔자인 시대라고 하지만 애기를 주렁주렁 달고 셋방을 구하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
아주 드물게 노숙자가 탈바꿈하여 성공신화로 보도되기는 한다. 이는 에디슨같은 얘기이다. 어디 에디슨같이 다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측은지심이 많은 편이다. 노숙자를 보더라고 한참 동안 바라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그들도 자랄 때는 목욕을 시키면서 우리왕자나 장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홍역도 거치고 경끼를 하면 바늘로 따 주기를 여러번 했을 것이다.
오매불망 키웠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무슨 罪業이 그리도 무거워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 신세가 되어서 혹한에 한데 잠을 자면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지하철 한쪽 구석에 보따리가 두개인 노숙자는 약속이 있어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다.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선채 있다. 필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춥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보이스칼라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여러번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을 이었다.
나를 보고 가볍게 웃는다. 아마 오랜만에 사람을 대하고 웃어 보는 듯 느껴지다. 노숙자의 가장 큰 고통은 고독이라고 한다. 어느 누가 말을 걸어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의 면전에서 동정하는 말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임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마음에 진심을 담아서 대화를 여러 차례 나누어 보았다.
200명이나 되는 중견기업의 사장을 했는데 회사의 경영은 그런대로 하여 왔으나 보증을 잘못서서 그만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다.
집이 넘어가게 되어 가족이 뿔뿔이 산새처럼 흩어져 버렸는데 아내가 먼저 그만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몸도 적응이 되었다고 하면서 긴 한숨을 토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미안하다면서 전해 주었다.
참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잠은 침낭안에서 바람이 없는 건물벽에서 자고 점심은 배달시켜 먹고 내어 놓은 그릇의 남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수도 공중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한다. 목욕은 어디서 하는지 궁금했으나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제는 빵이나 생수 정도는 지나는 길에 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숙자는 모든 업보로 이생에 다 갚고 가면 다음 생애는 좋은 곳에 몸을 받아 태어 나겠지만 어렵다고 도망간 아내는 아마 노숙자보다 훨씬 더 힘든 험로역정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여의도 말 잘하는 양반들! 쓸데없는 싸움질 그만하고 장농속의 안입는 옷이나 챙겨 노숙자를 위하여 작은 보시라도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툭하면 입에 달고 살면서 국민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것이 여의도 양반들의 수작이 아닌가 말이다.
똑똑한척 하고 있지만 가치관이 젬뱅이 수준의 하근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당신들이다.
노숙자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당하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날씨가 급강하면 노숙자는 잔인한 하늘을 탓할 것이다.
지하도에는 행인이 많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는 더 훈훈해질 것이다.
:: 이경국 대구저널 칼럼니스트 ::
사) 국어고전문화원 이사(현)
진성이씨 서울화수회 사무국장(전)
전체댓글 1
소수성애자를 위한 '퀴어축제'나 용산의
'할로윈 압사'같은 일에 언론은 소모적인
에너지를 너무 무리하게 낭비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차라리 '노숙자에 대한 실태'를 거론하여
국민들이 따뜻한
마음을 지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숙자는 씨가 따로 있는듯 고개를 돌리는
행인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절대고독을
느끼고 있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여의도 잘난 사람들 노숙자 일일체험을 시켜
보았으면 싶습니다.
적어도 '임사체험' 보다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